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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설픈 나의 학창시절(제1편)
    어설픈 내 삶의 흔적 2024. 10. 21. 12:42

    1: 철길이 지나는 마을

    1950년대 초반, 깊은 산자락을 휘감아 도는 철길 하나가 우리 마을의 자부심이었다. 아침저녁으로 기적 소리를 울리며 지나가는 증기기관차는 마을 아이들의 로망이자, 바깥세상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또 기차 구경하러 가니?" 어머니의 걱정 섞인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지만, 나는 이미 대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철도 옆 작은 언덕에 올라서면 저 멀리 굽이굽이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오는 기차가 보였다.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다가오는 기차는 마치 커다란 용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언젠가는 저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다.

    우리 마을은 산촌이었지만, 철도가 놓이고 전깃불이 들어오면서 제법 근대화된 곳이 되어 있었다. 저녁이면 전깃불 아래 모이는 사람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는 시골 마을의 일상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겉모습과 달리 우리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고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이었다.

    철길 위를 달리는 기차처럼, 우리의 꿈도 저 멀리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꿈의 종착역이 어디인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그 여정이 우리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는 희망뿐이었다.

     

    2: 죽음의 문턱

    내 생의 첫 시련은 다섯 살 때 찾아왔다. 봄날 따스한 햇살이 창가에 비치던 날, 나는 홍역에 걸렸다. 지금이야 예방접종 한 번으로 막을 수 있는 병이지만, 당시에는 죽음의 다른 이름이나 다름없었다.

    "얘는 아직 호적에도 안 올렸지요?" 마을의 어른이 물었다. ". 홍역 고비를 넘겨야."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때만 해도 시골에서는 아이가 홍역을 이겨내기 전까지는 이름도 제대로 짓지 않았다. 그만큼 많은 아이가 이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의식을 잃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며 벽과 천장이 내 위로 무너져 내리는 듯한 환각에 시달렸다.

    "이제 사람 구실은 글렀네." 어른들의 한숨 섞인 말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장남이었던 나를 부모님과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으셨다. 밤새 내 곁을 지키며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열을 식히고, 정신을 잃을 때마다 이름을 부르며 깨워주셨다. 그들의 손길은 마치 생명의 끈과도 같았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등대처럼, 그 지극한 정성이 나를 삶의 언덕으로 이끌어 주었다.

    어머니의 눈물, 아버지의 기도, 할머니의 주름진 손길.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나를 죽음의 문턱에서 끌어당겼다. 그 사랑의 힘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봄을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죽음과의 첫 대면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내 안에 깊이 새겨져, 앞으로 마주칠 모든 시련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의 씨앗이 되었다.

     

    3: 할머니의 안방

    홍역의 고비를 넘긴 후, 나는 놀랍게도 또래 중에서 제일 크고 건강한 아이로 자랐다. 할머니는 그걸 두고 "죽을 고비 넘긴 아이는 더 강하게 자란다"라고 하셨다. 그 말씀은 마치 주문처럼 내 가슴에 새겨졌고, 나는 그 믿음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유치원도 없던 그 시절, 할머니는 나의 첫 스승이 되어주셨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한글과 산수를 가르쳐 주셨는데, 그 과정은 마치 할머니와 나만의 비밀 놀이 같았다.

    "ㄱㄴㄷㄹ. 우리 손주 똑똑해서 금방 다 외우는구나!"

    할머니의 칭찬에 나는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게 배운 지식은 후에 내가 자랑스럽게 뽐낼 수 있는 재주가 되었다. 할머니의 가르침은 단순한 글자나 숫자를 넘어, 삶의 지혜를 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리듯,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았다.

    우리 집 안방은 할머니의 영역이었다. 낮에는 혼자만의 공간이었지만, 저녁이면 동네의 사랑방으로 변했다. 특히 겨울철이면 더욱 그랬다. 따뜻한 아랫목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마치 살아있는 역사책 같았다.

    동네 어르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버지께서 심청전, 장화홍련전, 홍길동전 등 세로로 인쇄된 이야기책을 읽어 주시곤 했다. 그리고 다음 순서는 항상 똑똑하고 잘생긴 손자를 자랑하고 싶은 할머니의 뜻에 따라 내가 어른들 앞에 나섰다.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내가 한글을 또박또박 읽고, 가족들의 생일과 본관, 제삿날을 줄줄 외우자, 어르신들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아이고, 신동 났네!" 어르신들의 칭찬에 할머니의 얼굴에는 꽃이 피었다.

    그 순간 나는 할머니가 얼마나 나를 자랑스러워하시는지, 그리고 그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의 사랑은 마치 따뜻한 햇살 같아서, 그 빛을 받으며 나는 무럭무럭 자랐다. 그리고 그 사랑은 내 안에서 다시 꽃피어, 앞으로 만날 모든 이들에게 전해질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4: 교감 선생님의 빨간 펜

    봄이 오면서 교실 창가에 애벌레 한 마리가 나타났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나는 그 작은 생명체에 매료되었다. 그 애벌레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내게는 신비로운 세계의 문을 여는 열쇠 같았다.

    담임 선생님은 그것이 거염벌레라고 하시면서 관찰 일기를 쓰도록 권하셨다. 그날부터 나는 일기장에 애벌레의 변화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관찰 일기였다. 하지만 어느 날, 일기장에 낯선 빨간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자연의 신비를 발견한 너의 눈빛이 참 반짝이는구나. - 교감 선생님'

    그것이 교감 선생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로 매일, 내 관찰 일기장에는 빨간 펜으로 쓰인 짧은 메시지가 더해졌다. 때로는 질문이었고, 때로는 칭찬이었으며, 가끔은 깊이 있는 통찰이기도 했다. 교감 선생님의 메시지는 마치 등대의 빛처럼 내 호기심의 항해를 인도했다.

    "애벌레가 고치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아침, 나는 교감실로 달려갔다. 숨을 헐떡이며 전한 내 말에 교감 선생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

    "그래, 민호야. 이제 곧 아름다운 나비가 되겠구나. 하지만 그 과정이 애벌레에게는 얼마나 힘들까?"

    교감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 마치 제가 홍역을 앓았을 때처럼요."

    교감 선생님은 잠시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셨다가, 이내 따뜻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래, 민호야. 인생의 모든 변화는 어려움을 동반하지. 하지만 그 과정을 견뎌내면, 우리는 더 아름답게 비상할 수 있단다."

    그 말씀은 내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관찰하고 있던 것은 단순한 애벌레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진리였다. 교감 선생님의 빨간 펜은 단순히 글자를 쓰는 도구가 아니라, 내 마음에 깊은 지혜의 씨앗을 심는 도구였다.

    세월이 흐른 후 알고 보니 거염벌레는 농민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는 농작물 파괴자이며 생김새도 그렇게 낭만적인 모습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 그 호기심과 관찰의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교감 선생님의 가르침은, 삶의 모든 순간이 우리를 성장시키는 기회임을 일깨워 주는 영원한 교훈이 되었다.

     

    5: 외다리 싸움의 영웅

    운동장에 그려진 두 개의 원은 마치 작은 세계를 나누는 경계선 같았다. 각각의 원은 양 팀의 영역이었고, 그 사이의 공간은 우리의 전쟁터였다. 외다리 싸움은 우리 학교의 전통이자 자부심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놀이가 아닌, 우리의 용기와 지혜, 그리고 협동심을 시험하는 작은 인생의 축소판이었다.

    "이번엔 우리가 이긴다!" 상대 팀 주장인 영호가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그래, 한번 해보자."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내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지만, 가슴 속에서는 긴장감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규칙은 단순했다. 원을 벗어나면 한 발로만 서야 했고, 상대를 넘어뜨리거나 양발이 땅에 닿게 만들면 승리였다. 아웃된 선수는 상대 진영에 포로가 되지만, 아직 살아있는 팀원이 손을 건드리면 부활할 수 있었다. 이 간단한 규칙 속에서 우리는 전략가가 되고, 전사가 되고, 때로는 구원자가 되어야 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운동장은 함성과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한 발로 뛰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그 속에서 나는 마치 물 위를 걷듯 상대방 사이를 유연하게 빠져나갔다.

    "민호야! 우리 구해줘!" 포로가 된 급우들의 절박한 외침이 들려왔다. 상대편 십여 명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방어에 나섰지만, 나는 특유의 균형 감각으로 한 발로 서서 상대방을 피해 다녔다. 체격이 작은 아이들은 쉽게 밀어낼 수 있었고, 덩치가 큰 아이들은 재빨리 피해 지쳐버리게 했다.

    내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계산이 이루어졌다. 누구를 먼저 공략할지, 어떤 경로로 갈지, 언제 팀원들을 구출할지. 그것은 마치 복잡한 체스 게임과도 같았다.

    마침내 마지막 상대를 쓰러뜨리고 포로들을 구출해 낸 순간 운동장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 민호가 또 해냈다!" 교실 창가에 매달린 다른 반 아이들도 손뼉을 쳤다.

    승리의 기쁨은 컸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팀원들과 나눈 환한 미소였다.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으며 기쁨을 나눴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진정한 승리는 혼자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그날의 경기는 끝났지만, 그때의 경험은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균형을 잡는 법, 전략을 세우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힘을 모아 어려움을 이겨내는 법. 이 모든 것들이 앞으로의 인생에서 귀중한 밑거름이 될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6: 원 안의 빨간 선

    우리 학급은 특이하게도 2학년부터 5학년까지 한 분의 담임 선생님과 함께였다. 그 시간 동안 나는 학급 반장 자리를 지켰고, 6학년이 되어서는 전교 회장을 맡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직책이 아닌, 책임과 성장의 기회였다.

    운동장에서 전체 조회가 있는 날이면, 나는 앞에 서서 학년, 반별로 정렬하도록 지휘했다. 교장 선생님이 단에 오르시면 "차렷, 경례, 열중쉬어" 구령을 붙이게 되는데, 꽤나 큰 목소리를 내야 했다.

    할머니는 동네 어르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 손자가 전교 회장인데, 조회 때 '차렷, 경례' 구령을 붙이면 우렁찬 목소리가 우리 집 마당에서도 들린다고 뻥?을 치시곤 하셨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족히 1km가 넘는 거리인데 말이다. 할머니의 과장된 자랑이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 뿌듯했다.

    매년 봄이면 선생님은 특별한 설문을 하셨다. 좋아하는 급우의 이름을 쪽지에 적어내는 것이었다. "이건 비밀이에요. 선생님만 볼 거니까 솔직하게 써주세요."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쪽지를 작성했다.

    반장이었던 나는 자주 선생님의 심부름을 했다. 어느 날, 선생님의 책상에서 우연히 커다란 원형 도표를 발견했다. 원을 따라 반 아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빨간 선들이 거미줄처럼 그려져 있었다.

    호기심에 이끌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우리가 적은 쪽지를 바탕으로 만든 관계도였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끼리 연결해 놓은 것이었다. 놀랍게도 내 이름을 중심으로 수많은 빨간 선이 한군데로 모여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건 단순한 인기가 아닌, 진심 어린 우정의 증표였다. 동시에 큰 책임감도 느껴졌다. 많은 친구들이 나를 믿고 의지한다는 것, 그리고 그만큼 나도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생님의 이 특별한 방법은 우리 반 아이들의 관계를 이해하고, 소외된 아이들을 보살피기 위한 것이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원형 도표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연결하는 소중한 지도 그 자체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더욱 열심히 친구들을 살폈다. 누군가 혼자 있으면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고, 어려움에 부닥친 친구가 있으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원 안의 빨간 선들처럼, 우리의 우정은 더욱 단단하게 얽혀갔다.

    이 경험은 내게 리더십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주었다. 그것은 앞에 서서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마음을 이해하고 연결하는 것임을. 그리고 그 가르침은 평생 내 삶의 나침반이 되었다.

     

    7: 봄날의 나비

    할머니의 안방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문득 교실 창가에서 키웠던 그 나비가 생각났다. 이제는 교감 선생님도 다른 학교로 가시고 없었지만,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 순간들이 내 마음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할머니, 나비는 왜 고치에서 나오는 걸까요?" 나는 문득 궁금증이 생겨 물었다.

    할머니는 바느질하던 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셨다. "으응? 그야 더 예쁘게 날아다니려고 그러는 거겠지."

    "하지만 할머니, 고치 속에서는 엄청 아플 텐데요. 몸이 다 녹았다가 다시 만들어진대요." 내 말에 할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

    "그래서 네가 홍역을 앓은 거야." 할머니의 대답은 의외였다.

    "?" 나는 할머니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해 되물었다.

    할머니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시며 설명해 주셨다. "사람도 나비처럼 아파야 더 단단해지는 법이야. 네가 그렇게 아프고 나서 더 몸이 튼튼해졌지?"

    할머니의 말씀은 교감 선생님의 가르침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내 인생의 첫 고비였던 홍역도,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성장도, 마치 나비의 일생과 같았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고치'를 겪고 있는 것이었다.

    "할머니, 그럼 저도 언젠가 나비처럼 될 수 있을까요?" 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할머니는 부드럽게 웃으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그럼, 우리 민호는 이미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가고 있어. 네가 겪은 모든 일들이 너를 더 강하고 아름답게 만들고 있단다."

    그 순간, 안방 창가로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봄날의 따스한 햇살 속에서 나비의 날갯짓이 반짝였다. 마치 그날의 그 나비가 다시 찾아온 것만 같았다. 나는 그 나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도 저 나비처럼 언젠가는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다.

    할머니의 지혜, 교감 선생님의 가르침, 그리고 내가 겪은 모든 경험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내 안에서 무언가가 움트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아마도 미래를 향한 희망의 날개일 것이다.

    나비는 잠시 창가에 머물다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언젠가 나도 저 나비처럼 자유롭게 날 수 있을 때까지, 지금의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리라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는 모든 어려움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드는 '고치'로 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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